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전조
역사상에서 대표적인 인플레이션형 독일의 부채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하여 분석해 보겠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독일의 부채 위기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은 192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1930년의 경제적 정치적 변화를 불러왔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부채사이클, 경제활동 시장등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생했다. 독일은 전쟁 중에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하여 통화가치가 절하되며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경험을 하였다. 독일의 경우는 패전국이 전쟁 부채가 많을 때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은 당시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보유고가 부족해지자 금 태환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전쟁이 발생하자 독일 국민은 금으로 교환하기 시작해 뱅크런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일정부는 은행 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금 태환을 중단했다. 이후 화폐 찍는 속도는 매우 빨리 진행되고 한 달 정도만에 약 30% 증가했다. 이러한 양상은 전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통화로 지급하기로 약정된 증권을 투자자들이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 중앙은행은 통화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어려워진다. 투자자가 채권을 현금화한다면, 중앙은행은 대규모 채무불이행이 발행하거나, 다량의 통화가 유통되게 하여 가치하락을 감수해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결국 중앙은행은 금 태환을 중단하고 화폐를 찍어내는 방안을 선택하게 된다.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어 통화 평가절하 시 모든 물건의 가격이 오른다. 보유자산의 가치가 오르니 보통사람들은 기뻐한다. 화폐를 찍어 유동성 위기 발생과 경기 위축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준다. 유동성 위기나 경기 위축은 전쟁에도 큰 지장을 준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 대부분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유이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일정부는 지출을 대폭 늘렸다 1914년과 1917년 사이에 정부지출은 GDP 대비 2.5배 정도 늘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 2년 동안, 채권자들이 마르크화로 지급받기를 꺼리자 독일정부는 외국통화로 자금을 빌리기 시작했다. 재무자들이 빚을 갚으려면 금이나 외국 통화를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전쟁에 패하면서 독일에서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르크화의 가치는 달러화 대비 30%로 하락했고 독일 주식시장은 거의 반토막이 되었다. 통화량은 50%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은 30%로 올랐다.
독일은 나라전체를 점령당하거나 베르사유 조약에 합의해야 하는 상황에 왔다. 독일은 조약에 서명했는데 이는 환율시장의 붕괴를 불러왔고 마르크화는 달러대비 90%나 하락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치솟아 140%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국내 통화를 팔아 국외로 빠져나가는 자본 이탈이 통화 약세를 이끌면서 인플레이션이 급증했다. 전형적인 인플레이션형 불황이 일어나는 방식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시작
독일은 연합군과 배상금 협상을 하였는데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마르크화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는 금융 붕괴 일보 직전이었다. 중앙은행은 더 신속하게 화폐를 찍어내어 정부 부채 증가분을 화폐 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찍어낼 때마다 더 많은 돈이 경제 활동으로 흘러가지 않고 통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사람들은 금 같은 실물자산과 외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화폐를 찍어내기를 중단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하이퍼인플레이션의 단계에서는 중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극단적인 자본 이탈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서로 증폭되면 가치를 일어 가는 데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화폐를 찍어내기 중단하면 극심한 현금 부족으로 이어지며, 모든 활동이 붕괴를 불러온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종결
1923년 말이 되자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독일 사회의 심각한 고통을 주었다. 실업률이 증가했고 세수도 감소했다. 식량이 부족해졌고 마르크화 거래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연합국은 배상금 지급을 유예하고 독일과 채무 재조정 협상을 재개했다.
하지만 단기적인 방법 보다 실질적인 해결이 필요했다. 수년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실제 사용가능한 통화를 원하게 되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새로운 통화를 만드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다. 독일의 경우 3단계로 걸쳐 실시하였다. 독일은 신규 통화인 렌텐마르크 발행 계획을 세워 발표했다. 렌텐마르크는 일정한 교환비율을 고정했다. 렌텐마르크와 교환 비율이 조정된 마르크화 지폐가 해외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으로 떨어졌다. 새로운 통화가 성공한 이유는 적은 양의 화폐 발행과 실물자산으로의 가치를 보장한 것에 있다.
독일은 신용긴축으로 민간 부문으로 확대할 신용 금액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는 새로운 신용 창출을 두고 엄격하게 제한이 가해지자 기업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러한 조치로 인플레이션은 점점 낮아졌다. 또한 외환 보유고 축적을 통하여 투자자 유치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종결이 된다.
위기는 거의 끝났나고 독일은 회복기에 접어들었지만 대공황이 찾아왔다. 이 위기는 경제를 황폐화되었다.
앞에서 본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국가와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 간단하게 보았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식량도 구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화폐로 인해 올 수 있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교훈을 삼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위기가 왔을 때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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