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버블
미국의 1920년대부터 1930년대 부채 사이클을 알아보기로 한다. 디플레이션 유발형 디레버리징의 전형적인 미국대공황이 중심이다.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과 1920년 침체 이후 미국 경제는 급속한 성장을 하였다. 중산층이 성장하고 각 도시에 전기가 보급되면서 기술시장이 열렸다. 라디오,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보유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의 증가를 이끌었다. 이 시기는 경제 성장세가 탄탄하고 인플레이션은 유지되었다. 자본가, 노동자 모두 벌어들이는 시기였다. 1923년부터 1926년까지 부채가 생산성 향상에 투입되어 빠르게 소득이 증가하고 적정부채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그사이 버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버블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레버리지에 의존한 베팅을 멈추지 않았다. 외국인이 보았을 때도 미국은 매력적인 투자처로 금본위제를 선택하고 있는 미국에 투자를 했다. 금을 주고 달라를 매수하여 미국으로 전 세계의 금이 모였다. 금유출이 심하자 각국은 달러 금리를 낮추어 줄 것을 요청한다. 1927년 봄 미국연방준비제도는 할인율을 4%에서 3.5%로 낮췄다. 이는 버블시기에 나타나는 부주의한 정책이었다.
경제 성장은 완화정책과 언론보도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연방준비제도의 완화정책으로 주식시장은 버블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1927년에서 1928년 사이 주가가 2배 가까이 오르자 증거금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여 몇 배의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상승 기대감에 신규 매수자들이 넘쳐났다. 주식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리자 주식을 처음 하는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버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참신한 방법이었던 콘론시장은 대형 채널로 성장하며 주식 매입 자금 대출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해외 자본도 꾸준하게 유입되었다.
연방제도의 규제 시스템 밖의 대출기관에서의 자금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또한 투자신탁이 버블기에 급성장하면서 투자자들이 몰렸다. 은행들은 경기침체 이전보다 건전성이 높았다. 자본 비율이 높아지고 정기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는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연방준비제도는 금리인상을 논의했지만 경기는 안정되어 있고 인플레이션도 안정되어 있어 금리인상을 하지 못한다. 부채 버블은 부채로 인한 자산가격의 상승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버블이다. 연방준비제도는 이점을 신경 쓰지 못하였다.
1920년대 고점, 붕괴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1.5% 올렸다. 긴축에 들어간 것이다.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져 하락하기 시작했다. 콜금리는 20%까지 치솟으며 거래량은 폭증했다. 레버리지를 활용한 소규모 투자자들에게 마진콜이 나오면서 강매 현상이 발생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시장에 달러를 공급할 준비되어 있다고 발표하자 시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통화긴축 정책은 계속되었다. 서서히 주식시장은 붕괴가 시작되었다.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자들은 증거금을 확보 또는 주식처분의 두 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매도물량이 대량으로 증가하였다. 매물폭탄으로 하락이 가속되며 마진콜이 증가하면서 더욱 하락폭은 커졌다. 은행연합은 시장안정을 위해 주식을 매입하였다. 이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락을 멈추고 상승하였다. 하지만 다시 매도 주문이 폭증함에 따라 폭락과 패닉이 다시 발생하였다. 연방준비제도는 유동성을 공급하여 신용 붕괴를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잠깐의 하락을 멈추었을 뿐 계속 하락하였다. 레버리지를 활용한 세력과 대출해 준 금융기관이 큰 문제가 생겼다. 주식 폭락은 경제에 악영향을 주었다. 주가지수는 9월을 고점을 기준으로 거의 반토막이 되었다.
붕괴를 막기 위한 노력
시장 붕괴와 경기 침체에 대한 후버 행정부의 대처가 그 당시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금리를 4.5%로 다시 낮췄다. 연방준비제도는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제공하였다. 이로써 다시 시장의 반등이 시작되었다.
1930년 미국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하였다. 금리는 2.5%까지 낮추었으며 도로 건설과 토건 계획안을 통과해 부양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경기 부양책에도 경기침체는 지속되었다. 실업률은 증가하고 설비 가동률은 감소하고 생산도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 시장도 붕괴가 시작되었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주식시장은 다시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산업은 신용 상태가 악화되면서 더욱 큰 타격을 받았다.
경기침체에서 보호주의 정서가 커지기 시작했다. 비난을 외부로 돌리며 관세를 높여 국내 산업을 살리려고 했다. 스무트 홀리 관세법이 통과되면서 수입관세가 부과되었다. 이는 세계 무역전쟁을 유발하고 세계경제가 둔화되었다. 또한 이민 제한을 실행하였다.
은행들은 대출해 준 사람들이 불황을 맞으면서 점점 악화되어 갔다. 초기에 무너진 은행들은 부동산 대출금, 가뭄 피해로 손실 입은 은행들이었다. 은행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뱅크런이 일어났다. 지급 능력이 없는 은행은 차례로 문을 닫기 시작했다. 뱅크런으로 감소한 예금액은 총예금의 10% 미만이었다. 언론들은 다시 낙관론을 펼쳤고 미국 경제가 다시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주식시장도 점차 회복되었다. 하지만 반등은 잠깐이었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유럽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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